오, 한복한 인생 - 리슬 LEESLE
뉴스

뉴스
PRESS
게시판 상세
제목
작성자

 

 

“흰옷을 입으시오. 흰옷을 입으시오. 그래야 폭격을 면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막바지에 ‘미국의 소리(VOA)‘ 라디오 방송을 통해 흘러나온 이승만 박사의 외침이다. 한반도 상공에 나타난 B29기가 ‘조선 사람은 폭격하지 않는다’며 흰옷 착복으로 식별을 뚜렷하게 하라는 권고였다. 거리에 흰옷 입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일본 경찰이 먹물 총을 쏘아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백의민족(白衣民族). 흰색을 숭상하여 흰옷을 즐겨 입어온 전통에서 유래한 우리 겨레의 별칭이다. 『삼국지』『수서』『송사』 같은 중국 고문헌에는 부여나 신라, 고려 사람들의 흰옷 입는 풍속을 적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 문헌에는 화려한 채색 옷차림이 등장하곤 한다. 이를 두고, 신분제 사회에서의 지배층은 견직물에 색실로 자수를 놓거나 홍색과 자색으로 화려하게 염색해 입었지만 평민들은 흰옷차림이 대부분이었다는 설이 많다. 정말 그랬을까.

우아한 맵시와 화사한 색상이 한복 매력
18세기 말 단원 김홍도의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 부임해온 평양감사를 환영하는 달밤 뱃놀이 잔치를 그린 그림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95명의 상민들 가운데 흰색 저고리를 입은 인물은 고작 26명이고 나머지는 청·황·홍·흑·갈색 등 가지가지다. 무속인들은 오방색(五方色)이라 해서 다섯 가지 채색 옷을 입었다. 여염집 여인들은 노랑저고리와 다홍치마 혹은 청치마가 일반적이었다. 백의민족이라고 해서 흰옷만 입진 않았던 것이다.

 한복의 매력은 우아한 맵시와 화사한 색상이다. 여성한복의 멋스러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남성한복도 제대로 갖춰 입으면 품격이 있다.

 ‘감태(김) 같이 채진 머리, 동백기름으로 광을 내어, 갑사댕기 들였네. 쌍문초(중국비단) 진동옷, 청 중추막에 도포 받쳐 분홍 띠 둘러 띠고, 만석 당혜(중국 갓신)를 좔좔 끌어…’

 판소리 <춘향가>의 도입부에 묘사된 이도령의 옷차림이다. 그네 타는 춘향은 비단옷차림인데 인간이 아니라 숫제 선녀의 풍모라 이도령은 심란하기만 하다.

 복식(服飾) 전문가들은 “우리의 개화는 의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무슬림의 히잡처럼 쓰개치마를 둘러쓰고 다니던 여성이 스커트를 입고 당당하게 활보한다. 근대의 풍경이다. 전통복장의 부자유스러움에서 벗어나면서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일대변혁이 일었다. 지금 우리는 특정한 행사 때 말고는 대부분 한복을 입지 않는다. 복식에 관한 한 한국인은 이미 세계화되었다.

 옷.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첫 번째다. 먹고 잠자는 건 뭇 생명의 공통이로되 옷을 갖춰 입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옷’이라는 글자는 두 팔 벌린 사람의 형상처럼 보인다. 그래서 ‘옷은 곧 사람’이라며 복식 문화를 강조하곤 한다. 문화의 시작은 복식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중·일 3국의 전통문화는 유사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다르다. 옷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와 한복은 뭐가 가장 다를까. 치파오와 기모노는 통으로 돼 있지만 한복은 저고리와 바지, 치마로 구성된다. 치파오는 옆이 터져서 허벅지까지 드러나고 기모노도 몸매가 드러나지만 한복은 몸매를 개방형으로 감춘다. 돌려서 매는 치마가 그렇다.

 옷은 기능성을 넘어 나를 나답게 만드는 상징적 표현이다. 옷은 제도를 뜻하기도 한다. 흔히 걸맞지 않는 제도를 가리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비유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몸에 잘 맞는 양장’을 입고 ‘입으면 어색한 한복’은 잘 입지 않는다.

젊은 디자이너들 신개념 한복에 도전
아산정책연구원 아산서원 알럼나이 소모임 팀은 16~17일 서울 신촌·이대·홍대·이문동·대학로에서 만난 20~35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간이 여론조사를 했다.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지 않는 이유는 묻자, 35.6%가 ‘불편하고 디자인이나 색상이 부자연스러워서’를 꼽았다. 20.7%는 ‘다른 사람들이 입지 않아서 시선이 부담스럽다’, 19.5%는 ‘가격이 비싸서’라고 했다. 4%는 ‘태어나면서부터 한복이 일상복이 아니어서 입는 것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복을 보다 세련된 디자인과 색상으로 입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한복을 입으려면 우리 고유의 형태·소재·색채·문양·장신구의 미를 살려서 제대로 입어야죠. 요즘 생활한복을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해요. 저는 퓨전한복에 반대지만 세태가 그러니 아무래도 전통한복과 생활한복 두 가지를 다 인정해야 할 것 같네요. 어떻게 하든 전통한복의 일상복화는 어렵겠지만 전통한복의 생명력은 길다고 봐요.”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구혜자 침선장(針線匠)은 “입기 편하게 만드느라 자꾸 변형시키다보면 더 이상 한복이 아니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적인 정서만 가미되면 소재와 디자인은 얼마든지 변형시켜도 좋다’는 인식이 젊은 디자이너 그룹에 확산되고 있다. 옷하면 한복이 아니라 양장을 떠올리는 현실에서 전통만을 고집하다보면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거라는 얘기다.

 국내 한복 시장 규모는 약 1조3000억 원 정도다. 이는 국내 전체 패션시장 규모(56조7000억원)의 2% 가량이다. 그나마 한복을 빌려 입는 대여시장이 커지면서 소매시장은 더 위축될 전망이다.

 “우리의 생활패턴이 서구화됐는데 한복은 그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육부터 우리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면서 한복교복 입기 유도, 찾아가는 한복문화행사 등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으로 교복을 만들어야 입는다.”

 전국에 30개의 생활한복 매장이 있는 돌실나이 김남희 대표의 말이다.

 한복의 어떤 부분이 바뀐다면 더 자주 입게 될까.

 한복진흥센터가 15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국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관리와 세탁이 쉬워야’를 1285명(25.7%)이 꼽았다. ‘입는 방법이 다소 간편해야’을 꼽은 이는 1021명(20.5%), ‘동적인 활동에 불편이 없는 저고리’는 681명(13.6%), ‘몸에 적당히 맞아 활동적인 품과 바지’가 644명(12.9%)이었다. 관리와 세탁을 쉽게 하려면 소재부터 바뀌어야 한다. 간편하게 입게 하려면 디자인도 바꿔야 한다.

 실제로 그 몇 가지를 바꿔서 젊은층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 올해 28세의 황이슬 ‘손짱 디자인 한복’ 대표다. 인터넷으로 해외시장까지 개척해 월 1000만원 가량의 해외 매출을 올리고 있는 그는 당찬 개척자다. 그의 저서 『나는 한복 입고 홍대 간다』에는 나 홀로 창업하고 길을 만들어간 일화가 생생하다. “옷을 짓고 판매하고 경영 노하우까지 이끌어주는 학원이나 전문학교가 있다면 청년창업자가 활동하기 쉬울 것”이라는 그는 청바지와 어울리는 한복으로 ‘한복 길거리 패션’을 꿈꾼다.

실생활에 맞는 원단·디자인 개발 절실
한복 길거리 패션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한복 플래시몹으로 한복 사랑을 뽐내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곤 한다. “일본여행을 자주했는데 그때마다 기모노 입은 여성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우리나라도 예쁜 한복이 있는데 왜 안 입는 걸까. 늘 아쉬워하다 제가 직접 실천하게 되었죠.” 오아람(‘한복 세상을 꿈꾸다’ 회원)씨의 경우도 열성적인 한복 매니어다.

 “한복은 더 이상 전통문화라는 의무감으로 입는 옷이어서는 안 돼요. 너무나 입고 싶은 매력적인 패션이어야 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일상의 탈출이 되어야 하며,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감동이 돼야 해요. 패션으로서의 매력을 회복해야 가능하죠. 그러자면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현대생활에 적합한 원단과 디자인 개발을 최우선시 해야겠죠. 그런 다음, 다양한 쓰임새를 찾아나가고 문화콘텐트로 개발하는 겁니다. 바야흐로 융합의 시대, 한류 융성시대지요. 한복도 국악·한식·한옥·한지는 물론 미술·연극·무용·영상 등 다른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할 수도 있고, 관광·외교 등과 협업하여 한복을 주제로 한 해외공관 커스텀 파티(Costume Party)로 고급 한류문화를 전파할 수도 있을 겁니다.”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박선옥 예술감독(한복예술 여백)의 주장이다. 한복아트퍼포먼스 공연 ‘색공간(Color Space)’으로 한복의 빼어난 미학을 선보였던 그는 “한복업체들이 수익이 큰 혼수한복에만 갇혀서 콘텐트 개발을 등한시한다”고 꼬집었다.

 전통은 원형과 생성의 무늬다. 고정된 문화원형이나 본질이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시대의 거울인 패션이 유행을 타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여성의 저고리 허리춤 길이는 조선시대 영조 때까지도 엉덩이에 닿을 만큼 길었다. 치마는 당연히 허리에 둘렀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치마는 위로 올라갔고 드디어 가슴에 허리끈을 묶게 되었다.

 지금은 대다수가 양장을 하는 시대다. 형태·소재·색채·문양·장신구, 어느 한 가지라도 한국 정서가 깃든 옷으로 세상의 거리를 물결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kr

첨부파일 140921.jpg , 캡처1.JPG
비밀번호
  •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코맨트 입력하기
불건전한 내용 등은 관리자 판단에 의해 삭제 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이름  
  •   비밀번호  
  • / byte
  • 관리자답변보기  
  •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   비밀번호  
  • / byte

  • 게시글 관리하기
  •   게시글 변경 / 복제
    선택된 게시글 을 일괄적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변경하거나, 게시판을 이동시키고, 또 복제할 수 있습니다.

옵션 선택
아래 옵션을 통해 변경하세요.


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WORLD SHIPPING
    •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